돌아올 없는 다리(판문점)에서 노병의 눈물

·  전현석 기자http://image.chosun.com/cs/article/2011/title_author_arrow_up.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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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참전용사 아든 로울리 "60년전 그날도 오늘처럼 펑펑"

83세의 미국 6·25 참전용사 아든 로울리(Rowley) 27 판문점 '돌아오지 않는 다리' 위에서 굵은 눈물을 흘렸다.

60 33개월 동안 북한군 포로로 지내다 남북 포로교환으로 다리를 건넜던 순간이 떠올라서다.

"1953 8 18일이었다. 덥고 습했다. 트럭을 타고 다리를 건너 판문점에 내렸다.

살아서 고향 애리조나를 밟을 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는데, 그날도 오늘처럼 펑펑 울었다."

 

로울리 예비역 소령은 스무살 때인 1950 7 2공병대대 소속으로 일병 계급장을 달고 부산땅을 밟았다.

그해 12 1 북상하던 그의 부대는 평양 북쪽 군우리 전투에서 중공군에 포위돼 부대원 대부분이 전사하거나 포로로 잡혔다.

그가 복무했던 2공병대대는 여전히 한국에 주둔하고 있으며, 매년 11 30일밤 부대기를 불태우는 의식을 치른다고 한다.

그는 "(포로 생활 ) 부대원들이 북한군 감시를 피해 케이크를 만들어 성조기 장식을 했다"

"들킬까봐 오래 보지도 못하고 엉엉 울면서 먹어치웠다" 했다.

그는 "영양실조와 추위, 북한군의 폭력에 수많은 포로들이 죽었다" "포로로 잡힌 미군 7140여명

자유의 다리를 건넌 장병은 3600여명에 불과했다" 말했다.

그는 3 동안 포로로 지냈던 기억을 책으로 엮고 있는데 올해 4번째 책을 냈다.

그는 하나에 아들 , 손주 열여덟 , 증손주 열일곱 명을 뒀다. 5번째 한국을 찾은 그는 이번에는 손자 밀러 로울리(18) 함께 왔다.

그는 "나이가 많이 들어 이번이 마지막 한국 방문이 같다" 했다가 말을 바꿨다. "남북 통일이 된다면

다시 와서 돌아오지 않는 다리를 반대 방향으로 건너보고 싶다."

조선일보 사회면     현석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