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큐티 (#30), 다윗왕의 어린시절

시편 23: 1 – 6

 

1: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23편은 다윗이 청년시절, 양을 치는 목자였던 생활체험을 근거로하여 시입니다.

이시는 인생의 주인이시며 인도자 되시는 하나님과 그를 따르는 성도 사이의 절대적 신뢰와

보호관계를 비교해 가면서 노래한 찬양시입니다.  23편을 읽다가 보면 선한 목자를 따라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 앞에서 어떤 어려움과 두려움 없이 평안하게 살고 있는 어린양의 평안함을 보는듯 합니다.

 

1절은 과거와 현재의 삶에 있어서의 풍족함과 평안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2절과 3절은 평안할 하나님께서만이 주실 있는 그윽하고 생동감 넘치는 축복을 푸른초장과

쉴만한 물의 이미지를 통하여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4절과 5절은 험악한 거친 세상에서 있을 있는

환난 때에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고 인도하심으로 최후 승리를 주실 것이라는 확신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6절은 미래의 삶은 말할 것도 없고 영원한 종말론적 축복에 대한 확신까지 노래하고 있습니다.

먼저 목동시절의 다윗을 살펴봅니다.

위클리프 성경사전    229쪽부터 230쪽에 있는  다윗의  ”3 어린 시절중에서 인용했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노년기에 낳은 아들이다. 다윗에 대한 첫번째 언급은 사울왕의 후계자를 선택하기 위해

베들레햄으로 선지자 사무엘의 방문 기사에서 등장한다.  이새가 특별히 초청된 제사에서,

사무엘은 왕이 있는 가능성 있는 후보자로 이새의 아들들을 면접하기 시작했다.

사람씩 이새가 그의 아들들을 소개했지만, 사무엘이 새로운 지도자상으로 찾고 있던 사람은 찾을 없었다.

마지막으로 사무엘은 이새에게 부탁하여 막내 아들을 데리고 오게 했다.

그래서 다윗은 양을 치는 도중에 부름을 받아 나라를 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선지자의 인정을 받게 되었다.

다윗이 형제들 앞에서 기름 부음을 받았지만(삼상 16: 13), 기름 부음의 정확한 목적은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알려지지 않았다.  사무엘과 이스라엘에게 보다 중요한 것은, “이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신에게 크게

감동되었다 확신이었다 . 그는 백성을 위해서 선지자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였고,

나중에 백성의 선택도 얻게 되었다.  다윗은 두가지 중요한 사건으로 이스라엘에서 대중의 관심을 얻게 되었는데,

하나는 음악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힘에 관한 것이다. 사울의 우울증을 해소해 있는 재능있는 악사를 구할

다윗은 궁중의 관리에 의해 악사의 자리에 천거되었다.

삼상 16: 18 그의 자격 가운데 탈줄을 알고 호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다 했다.

 

훌륭한 외모와 뛰어난 음악적 재능 외에도 그는 훌륭한 가정의 배경을 갖고 있었고필요할 때에

합당한 말로서 어려운 상황을 극복할 있는 방법을 알고 있었으며, 공직에서 필요한 매력적인 자질을 가지고 있었다.

다윗은 위인에게 이미 운명지워진 청년으로서의 모든 요건을 지니고 있었다 

또한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시었다 것도 관심을 갖게 한다.  다윗의 다재함으로 사울의 관심을 끌었고,

궁전에서 가지의 직책 왕의 병기 나르는 자와 개인 악사로 발탁 되었다. 베들레햄이 사울왕의 집이 있는

기브아에서 하룻길에 불과하기때문에, 다윗은 아버지의 양때를 계속 돌보기위해 가끔 집으로 되돌아 갔다고 생각된다(삼상 17: 15).

그의 명성은 베냐민과 유다 모두에서 급속도로 높아 졌다.

국민의 관심을 끌었던 다윗의 어린 시절 중의 다른 사건은 엘라 골짜기에서 있었던 싸움에서

블레셋 거인 골리앗을 이긴 것이었다(삼상 17: ).

17: 사울이 자기 궁에서 악기를 타도록 다윗을 부르기 이전 사건에 해당되고 다윗의 자격을 설명하기 위해

저자가 삽입한 같다(삼상 16:18). 다윗은 병사로 있는 그의 형제들에게 음식을 전해 주고,

전쟁상황을 이새에게 돌아와 전해 주기 위해 베들레햄에 있는 집을 떠났다.

그가 진에 도착했을 , 그는 골리앗이 전쟁의 승패를 결정할 있는 싸움으로 자기와 단독으로 싸울 있는

히브리인을 제공하라고 40 동안 히브리 군대에게 도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헬라 전투에서는 양쪽 군대의 전면전이 아니고, 명의 전사가 싸움의 결과를 결정하는 단독 싸움을 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블레셋 사람들은 금속 산업을 장악했고, 어렸을 때부터 유능한 병사들이었기때문에, 히브리 군인들은 매우 불리한 위치에 있었다.

그와 싸우려고 한다는 것은 자살행위나 다름이 없었다. 사울은 승리의 어려움을 알고 나서,  자발적으로 싸우는 자에게

고위직책을 주고,  아버지집의 세금을 면하며, 사울의 딸과 결혼시키겠다는 조건을 제시했다. 다윗은 골리앗의 도전을 받아들였고,

사울은 군대가 가질 있는 가장 훌륭한 군장비를 다윗에게 제공했다.

 

다윗은 갑옷을 무용지물로 거절하고, 목자의 병기로서 물매와 물매돌인 자신의 병기를 선택했다. 

기구로 그는 지금까지 아버지의 양때를 보호했었고, 이제 그것으로 자기 하나님의 양때인 백성을 보호하려고 시도한 것이다. 

그는 자기 백성에게 승리를 주신다는 하나님에대한 영웅적인 믿음의 표현으로 골리앗의 제안을 받아드렸다. 

결국 골리앗은 양치는 목동에게 패하여 머리는 전쟁의 트로피로 예루살렘  수도로 가져갔고, 갑옷은 다윗의 장막에 놓아 두었다. 

그는 또한 궁궐에서 매력적인 왕자 요나단을 만났다. 그들의 우정과 상호간 충절의 이야기는 가히 성서 문학의 걸작이다.

이들의 우정은 몸은 둘이었으나, 영혼은 하나였다. 요나단과 다윗을 결속한 끈은, 다윗의 영웅적 용기와 물매를 쓰는

놀라운 기술도 아니고 나라에 대한 다윗의 열렬한 사랑과 이스라엘을 위한 하나님의 언약의 사랑 안에서 그들의 공통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