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린마당
조선 일보 국제부 노 석조 기자
이스라엘의 휴일은 금요일 해 질 무렵부터 시작된다. 일주일 내내 시끄러웠던 예루살렘에 그림자가 드리우면
요란한 경적음을 울리는 택시나 버스는 어느 새 종적을 감춘다. 식당과 카페, 주점, 기념품점도 문을 닫는다.
세계에서
몰려온 성지 순례객들이 그 앞에서 발을 동동 굴러도 가차없이 '쉼'이라는 팻말을 내걸고 문을 닫는다.
한국에선 '불금(불타는 금요일)'이라 불리는 이날 밤이 이스라엘에선 여러 형태로 발현되는 욕망이란 불씨를
잠시 꺼두어야 하는 안식일의 초입인 것이다. 토요일
밤까지 이어지는 이 같은 안식일을 현지 말로는 '사바스'라 부른다.
'사바스' 때 이스라엘에 있는 호텔에 가보면 엘리베이터가 매층마다 자동으로 멈춰서며 오르락내리락하는 광경을 볼 수 있다.
층수 버튼을 누르는 '일'을 하면 안 되기에 손을 대지 않고도 이용할 수 있는 엘리베이터가 따로 있는 것이다.
지난 2001년 이스라엘 의회인 크네세트는 건물을 지을 때 자동 운행 엘리베이터를 하나 이상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등의
내용을 담은 '사바스 특별법'을 만들었다. 가정에선 요리라는 '일'을 하지 않도록 토요일에 먹을 음식은 미리 준비해두기도 한다.
IT 강국인
이스라엘이지만 사람들은 이날만큼은 휴대폰과 컴퓨터의 자판도 건드리지 않는다고 한다.
이스라엘의 고집스러운 휴일 지키기는 얼핏 보면 바보스럽다. 운전, 요리, 버튼 누르기 등 일 같지 않은 '일'도 하지 않는 식의
'적극적인 휴식'은 소비 생활을 위축시켜 국가 경제 발전에 해가 될 것만 같다.
유대인 학생들은 한창 공부해야 하는 상황이라도 '사바스'가 되면 책에 손도 대지 않는다고 한다. 저러다가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게
어려워지는 것 아닌가 싶기도 하다. 그런데도
유대계 학생들의 명문대 진학률이 높은 걸 보면, 휴일에 '바보'같이 쉰다고 바보가 되지 않는 것은 확실한 모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더 나은 삶(OECD Better Life)'이란 보고서를 발표했다.
OECD 34개 회원국 및 러시아·브라질 등 36개 국가의 국민들이 어떤 상태로 살아가는지를 분야별로 평가한 것이다.
이 중 한국은 치안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종합 27위에 그쳤다. 특히 근로시간과 여가활동을 토대로
집계하는 '일과 삶의 균형' 분야에서는 최하위인 33위였다. 주간 노동 시간은 44.6시간으로 터키를 빼곤 가장 길었다.
"덜 쉬고 열심히 일한 게 왜 문제냐"고 할지 모른다. 하지만 한국의 노동생산성이 1인당 GDP 상위 17개국 평균보다
46.5%나 낮다고 한다. 한국 근로자들은 다른 선진국 근로자들과 똑같은 시간을 일해도 생산성은 그 반밖에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림에서 여백이 중요하듯, 우리 삶에서 휴식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바쁘고 살기 버거워도 일주일의 하루는 무거웠던 짐을 내려놓을 줄 알아야 한다.
삶의 여백을 가져야 그다음 날부터 이어지는 전쟁과 같은 날에서 잘 살아남을 수 있다.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골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