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물상] 병사의 마지막 편지

해현 논설위원(2013, 08,31)

미국 육군 스티브 플레어티 중사가 1969 베트남전에서 전사했다. 그는 품에 어머니와 친구에게 편지 4통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어머니를 안심시키려고 애썼다. "아버지가 찾으시면 내가 거의 죽을 뻔했지만 괜찮다고 하세요. 나는 진짜 운이 좋았어요.

편지 쓸게요." 월맹군은 그의 주검에서 편지를 꺼내 가선 미군 사기를 꺾는 이용했다. 월맹군 장교는 라디오 방송에서

죽은 병사의 편지를 읽으며 미군에게 전투를 거부하라고 설득했다.

▶그 월맹군 장교는 플레어티가 편지를 보관해뒀다가 2011 베트남어로 번역해 잡지에 실었다. 미국 국방부 관계자가 우연히

글을 읽곤 베트남 정부와 접촉했다. 1 리언 패네타 국방장관이 베트남을 방문했을 편지를 돌려받았다.

플레어티 유족은 "하늘에 있는 스티브도 자기가 보낸 편지가 43 만에 집에 왔으니 기뻐할 "이라고 했다.

▶엊그제 영국 왕실법원은 1 세계대전(1914~18)에서 전사한 병사들의 마지막 편지 23 통을 인터넷에 올렸다.

거의 100 만에 먼지를 털고 빛을 편지들이다. 병사들은 가족과 연인에게 편지를 썼지만 부치지는 못했다. 편지를 검열한 지휘부가

부대 위치를 비롯한 기밀이 담긴 편지는 보내지 못하게 했다. 숱한 병사들이 편지를 몸에 지닌 전투에 나섰다가 쓰러졌다.

부치지 못한 편지는 유언장이 되고 말았다. 영국군은 전사자 편지를 모아뒀지만 일손이 달려 부치지 못하고

버밍엄 부근 자료 보관소에 100 가까이 쌓아뒀다.

"엄마, 나는 전선으로 가요. 내가 가기 전에 엄마를 보지 못해 아쉬워요. 그래도 내가 돌아갈 때까지 용기 잃지 마세요.

" 어느 병사가 어머니를 걱정하며 편지다. 그는 총에 맞아 병원에서 숨졌다. 다른 병사는 아내에게 편지를 썼다.

"여보, 전쟁은 생각보다 오래갈 같아. 누구는 달이라고 하고, 누구는 년이라고 하네." 그는 결국 전사했지만 어디에 묻혔는지는 없다.

▶영국 왕실법원은 유족이나 일반인 누구든 병사 이름과 군번을 입력하면 편지를 있게 했다. 대신 6파운드(1만원) 내라고 했다.

역사학자들은 편지가 내년 100주년을 맞는 1 대전의 생생한 사료(史料)라고 반겼다. 어느 학자는 "편지 소유권을 가진 유족에게까지

돈을 받는 너무하다" 비판했다. 100 병사들의 편지는 전쟁의 실상을 가슴 뭉클하게 증언한다.

역사는 공동체의 기억이다. 영국인들은 역사를 가슴으로 기억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