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엘 로아이(감찰하시는 하나님)

창 16: 5 - 14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데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창 16: 13)

감찰은 다른 사람의 행동을 살펴보고 있다는 말이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는 자녀를 낳지 못하자 자기의 여종 하갈을 아브라함과 동침케 하여 아이를 낳게 했다.

하갈은 자기가 잉태한 것을 깨닫고 여주인 사라를 멸시하기 시작했다. 괴로워하던 사라는 하갈을 학대했다.

그래서 하갈은 사라를 피하여 광야로 도망했다. 하갈은 광야에서 고통하고 방황하고 있었다.

이처럼 쓸쓸해하고 괴로워하며 갈 길을 알지 못하던 하갈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서 그의 살길을 열어 주셨다.

 

지금도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때로는 하나님이 나를 살펴주시지 않고 돌보아 부시지 않는 것 같이 괴로움이 있을 때가 많이 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는데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오래도록 않고 있는데 언제나 완쾌함을 받을는지 알 수가 없다.

영적인 침체도 언제 회복될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러 할 때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하나님은 나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고 나 있는 가까운 곳에 계시면서

나의 행동을 살펴보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이다.

:5 "나의 받는 욕을 당신이 받아야 옳도다"

사라는 자기가 멸시받고 있는 원인이 분명히 자기 자신에게 있는데도 불구하고 반대로 남편 아브라함을 원망하고 있다.

:6 "사래가 하갈을 학대 하였더라"

하갈을 마음대로 해도 좋다는 승낙을 받아낸 사래는 하갈을 학대했다. "하갈이 도망 하였더라" 두 여인의 갈등과 싸움은 하갈이 광야로 도망갔으므로 끝이 났다.

:7 "여호와의 사자"

창세기 21: 17 에는 "여호와의 사자"를 "하나님의 사자"로 기록하고 있다. 이때 여호와의 사자가 누구인가 하는 것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학설이 있다.

1) 천사라는 견해

2) 여호와 하나님이라는 견해

3) 성령이라는 견해

4) 예수 그리스도라는 견해

구약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과 동일한 분으로 경배의 대상으로 나타난다.

그러므로 단순히 하나님의 사역을 위해 부름 받은 영으로 피조 된 천사(히 1: 14)와는 다르다고 하겠다.

이 경우 여호와의 사자는 4번째인 "예수 그리스도"라는 견해가 옳다고 하겠다. 그 이유는

1) 죄인은 하나님을 직접 볼 수가 없고

2) "사자"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으로, 성부 하나님 자신이 보냄을 받은 자가 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사자는 "성령" 아니면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것으로 불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성경은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성령이 볼 수 있는 인간으로 나타났다는 기록이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 하갈에게 나타나신 여호와의 사자는 예수 그리스도라고 하는 견해가 옳다고 하겠다.

:13 "감찰하시는" 지켜보시는 하나님의 뜻. 이처럼 광야에서 고통하고 방황하고 있는 하갈에게 나타나 위로와 소망을 주신 하나님은

오늘날도 여전히 황량하고 메마른 세상에서 갈등하고 방황하는 주님의 백성들을 사랑과 은혜의 복음으로 초대하셔서

하늘나라의 무한한 축복과 소망의 길로 인도해 주신다.

:14 "그러므로 그 샘을 브엘라해로이 라 불렀으며"

브엘라해로이의 원어적인 뜻은 "살아 계셔서 감찰하시는 자의 우물"이라는 뜻이다.

이것은 방황하고 고심하는 자신에게 찾아와 소망을 주신 하나님을 기념하기 위해 하갈이 그곳에 있던 우물에 붙인 이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