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테스탄트 주의의 

   프로테스탄트란 무엇인가? 이를 가장 설명한 것은 역시 에른스트 트뢸취(Ernst Troeltsch) 이다.

그는 20 세기 초에 프로테스탄트주의란 카톨릭 주의의 수정된 형태로서,카톨릭의 문제들은 그대로 남아 있는데,

이에 대하여 다른 해답들이 제시된 것이라하였다. 이처럼 프로테스탄트들이 새로운 방도로 대답한

가지 질문들은, 어떻게 구원 받는가? 종교적 권위의 근원은 무엇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신자의 생활의 본질은 무엇인가? 등이었다.


   1483 색슨 지방의 광부의 아들로 태어난 루터는 원래 법률가가 되고자 하였다. 그런데, 그는 1505 어느

스토테른하임이라는 촌락을 향해 가다가 천둥을 만나게 되었다. 번개가 그를 땅바닥에 쓰러뜨렸을 ,

공포에 질린 루터는 카톨릭 교회에서 가르친 광부들의 수호여성자에게 기도하였다.

안나시여, 저를 구해 주시면 수도사가 되겠나이다” .


   부모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루터는 서약을 지켰다. 그는 건강이 상할 정도로 엄격한 생활을 계속하였다.

그는 3일간 계속 금식하기도 했고 영하의 겨울 날씨에 담요도 없이 자기도 하였다. 그는 특히 스스로의 죄악성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깊이 실감했던 인물이었다. 루터는 재요 먼지요 죄에 가득한 주제에 살아계시고

영원하시며 진리이신 하나님과 대화할 있다는 말인가? 아무리 많은 고행과 그의 상급자들의 위로도 자신은

형편없고 저주 받은 죄인이라는 확신을 잇게 수는 없었다.  

 

   고민에 수도사는 성경 연구를 통해 그가 추구하였던 사랑을 발견하였다. 당시 새로 창립된 비텐베르크 대학에서

성경을 가르치던 그는 십자가 상에서의 다음과 같은 그리스도의 말씀에 충격을 받게 되었다.

나의 하나님,나의 하나님, 나를 버리셨나이까?” 그리스도가 버림을 받다니. 어떻게 주께서 유기 되실 있단 말인가.

루터도 물론 버림받은 느낌을 받은 적이 있었으나, 그는 죄인이었으므로 당연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그렇지 않으시다.


   그리하여 평안을 모르던 루터의 영혼 속에는 새로이 하나님의 혁명적인 모습이 형성되기 시작하였다.

드이어 1515, 바울의 로마서 서신을 연구하던 다음과 같은 구절에 부딧히게 되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 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1: 17).

여기에 바로 영적 확신을 위한 열쇠가 있었다. 그리하여 그는 다시 태어난 하였으며, 마치 낙원을 향해 활짝 열린 문을

통과한 듯한 느낌을 갖게 되었다. 


   루터는 이제 확실하게  발견하게 되었다. 인간은 그리스도의 희생의 공로 속에 있는 그의 믿음을 통해서만

구원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오직 십자가만이 인간의 죄를 제거하고 그를 사탄의 수중에서 구해낼 있다.

루터는 이리하여 그의 유명한 오직 믿음에 의해서만 의롭다하심의 교리에 이르게 되었다.  그는 교리가

믿음과 아울러 선행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가르쳤던 로마 교회의 신조와 얼마나 날카롭게 대조되는지 깨닫게 되었다.

 

현대인을 위한 교회사” (크리스챤 다이제스트), 브루스 셸리저, 박희석 옮김, Page 304 – 306.